[국토종주 기획-2편] 나는 누구인가?

 

국토종주를 하는 우리들은 매일 출발하기 전 숙소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는다. 이때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261명의 학생들이 그려진 망토도 펼쳐 놓는다. 벤자민학교 1기에 명예입학한 세월호 희생자 고故 이재욱 군의 어머니 홍영미 멘토께서 순례길에 데려가 달라고 주신 망토로, 261명의 영혼이 우리들과 함께한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 매일 출발하기 전 세월호 희생자 친구들이 그려진 망토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 벤자민 경기남부학습관 학생들만의 순례가 아닌 261명 또한 함께한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5월 6일에는 충북 영동 시내에서 이동했다. 거리는 15.61km. 순례 일정 중 가장 짧은 거리였기에 여유롭게 출발할 수 있었다. 날씨도, 컨디션도 최고였다.



▲ 도로 위를 걸을 때면 안전하게 한 줄로 걸어간다. 안전봉을 든 친구들이 자동차가 다가오는지 확인한다.

5월 7일은 충북 영동에서 충북 옥천까지 걸어가는 일정이었다. 20km 정도여서 부담되는 거리는 아니었으나 지금까지 누적된 피로 때문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묵언 수행하는 것도 아닌데 친구들과 대화도 줄어들었다. '생각 없이 걷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날 알게 되었다. 걸으면 생각이 멈추게 되었다. 다리가 움직이고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뿐이었다. 머릿속에 꿈틀대던 잡생각은 사라져갔다. 몸은 힘들었지만 그 힘든 느낌에 집중하면서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가 있었다.
 

▲ 날을 거듭 할수록 피로가 쌓여갔고 점차 친구들끼리의 말수도 줄어들게 되었다.

주위에서 말하는 나, 주변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 그것 때문에 쌓아온 편견들. 줄곧 내 머릿속에 있던 것들이다. 이것들을 나의 일부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걸을 때만큼은 한낮 잡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생각을 멈추고 집중했을 때, 나 자신은 그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주위의 말, 상처, 편견들은 내가 아니라 그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이 길을 걸으면서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5월 8일, 옥천에서 대전까지 25km를 걷는 날,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이 찾아왔다. 같이 순례하는 친구 중 아영이의 아버님께서 대전까지 와서 고기를 사주신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부풀어 힘을 냈다. 25km라는 거리는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저녁에는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었다. 국토순례를 떠나느라 수고가 많다며 고기를 사주신 아버님의 마음에 친구들 모두 감동했다.
 

▲ 계속되는 걷기 일정에 지쳐갔지만 아영이 아버님이 준비해주신 고기파티 덕분에 기운을 보충을 할 수 있었다.

5월 9일은 대전에서 세종까지 31km를 걸어가는 일정이었다. 출발하기에 앞서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우리들의 발목을 잡았다.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여 춥다가도 금세 더워지기도 했다.

 

위험한 상황도 발생했다. 큰 국도에서 맞은편으로 옮겨갈 때였다. 대표인 태욱이가 차가 지나지 않을 때 2명씩 건너자고 말했지만 그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뒤쪽에 있는 학생들이 먼저 건너버렸다. 다행히 차가 지나가진 않았지만 먼저 나간 친구들을 보고 다른 친구들이 따라 나갔다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그때부터 길을 건널 때는 무조건 대표학생의 지휘를 따르기로 약속을 했다.

 

저녁 때가 되어서 불규칙적으로 내리던 비가 이내 억수같이 퍼부었다. 친구들은 점차 지쳐갔고 여자 친구들은 곧 쓰러질 것처럼 힘들어했다. 걷다가 지훈이는 코피까지 흘렸다. 붉은 피가 계속 흘러 도로 바닥이 흥건해질 정도였다. 더 이상 종주를 진행하지 못할 것 같다고 판단한 우리들은 25km 지점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한계극복보다는 안전하게 다 같이 가는 것을 우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비는 정해진 목적지에 반드시 도착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또다른 난관이었다.

5월 10일, 기차를 타고 조치원역에서 전의역으로 이동했다. 순례길의 거점인 충남 천안의 '국학원'을 향해서 15km를 걷는 일정이었다. 국학원에서 5km가 남았을 즈음에 '단군대장정'을 하게 되었다.

 

단군대장정은 내가 왜 이 순례길을 걷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기 위해 혼자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친구들이 3분 간격을 두고 한명씩 출발하는데, 길을 걸으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나 자신에게 묻는다. 단군대장정은 첫 번째 학생이 출발하고 마지막 학생까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1시간 30분 동안 지속되었다.

 

단군대장정을 마치고 옆에 있던 서경이에게 무엇을 느꼈는지 물어봤다. 순례길 프로그램 중 하나였지만 나 자신을 위해 걸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고 말했다. 벤자민학교에 들어왔을 때부터 찾고 싶었던 장래 희망과 인간상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에는 '나는 지구경영자이고 우리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 이 순례를 하는 것'이라는 답이 나왔다고 한다.
 

▲ 일본에서는 뭉게구름을 '성장해 나가는 사람'에 비유한다고 한다. 단군대장정을 하던 중 하늘에 있는 뭉게구름을 보며 우리들이 순례를 통해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모든 친구들이 네 번째 거점인 국학원에 도착하게 되었다. 국학원은 한민족의 고유한 정신, 그 정신에서 비롯된 문화,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사람들에게 보급하는 곳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정신을 인류 보편적인 가치로 삼고 그 가치를 전하는 지구시민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국학원에 모든 친구들이 모이자 우리는 다 같이 운동장에 세워진 비석을 찾아갔다.
 

'한민족의 새로운 번영과 지구경영을 위하여' 국학원이 설립된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비석이었다.
 

▲ 한민족의 새로운 탄생과 지구경영을 위하여.'라고 적힌 비석 앞에서 지구시민선언문을 낭독했다.

국학원에서 1km정도 떨어진 '홍익인성교육원'이란 곳에서 우리 벤자민학교의 교장이신 김나옥 교장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일정에 관해 듣고는 학생들 스스로가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했다는 것이 놀랍고 자랑스럽다고 하셨다. 그리고 깨달음을 위해 걷고 있는 우리들이 작은 영웅, 작은 성인이라고도 하셨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이런 순례길이 우리들만의 프로젝트에서 끝나지 말고 주변의 다른 친구들에게 알려야 홍익을 실천하는 인성영재라고도 하셨다.

 

국학원에서 보았던 비석의 내용이 떠올랐다. '한민족의 새로운 번영'이란 한민족의 정신인 홍익정신이 다시 깨어나는 것이고 '지구경영'이란 그 정신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나와 세상이 분리된 것이 아니듯이 나 자신이 홍익정신을 깨닫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것이 지구경영인 것이다. 비석 앞에 섰을 때 나는 홍익정신을 전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뒤, 세월호 망토를 펼치고 다같이 단체 사진을 찍었다.

한국 일정의 3분의 2가 지나갔다. 순례를 통해 친구들은 홍익인간이란 무엇인지 스스로 답을 찾아가고 있다. 순례가 끝날 즈음에는 살아가는 데에 중요한 중심가치와 비전을 찾게 될 것 같다.

 

13일, 14일, 15일에는 각각 안산세월호분향소, 안양충혼탑, 광화문광장에 들를 예정이다. 한국일정의 마지막이 되었을 때 친구들은 한층 성장해 있을 것이다.

 

 

글/사진. 서재원 학생기자 seo11111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