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종주 기획-3편]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5월 11일, 천안 홍익인성교육원에서 출발해 평택까지 가는 일정이었다. 거리는 25km. 이날 드디어 충청도를 벗어나 경기도로 들어왔다. 천안에서 평택으로 넘어가는 다리는 건널 때 모든 친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처음 전주에서 출발했을 때가 불과 며칠 전 같은데, 이제 한국에서의 최종 목적지인 서울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이 와 닿았다. 
 

▲ 학생들이 충청남도와 경기도를 잇는 안성천. 서울이 머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져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평택 거리를 걷던 중 자전거를 타고 가던 아저씨가 줄지어 걸어가는 우리를 불렀다. 아저씨는 젊은 친구들이 도전하느라 수고가 많다면서 생수랑 초코파이가 가득 담긴 봉투를 건네 주셨다. 옆에서 같이 걷던 정현이는 '마침 목이 말라 힘들었는데 이렇게 아저씨가 찾아와 물을 사주었다. 분명 기적이다.'라면서 웃었다. 뜻밖의 도움을 주신 아저씨를 보며 세상에는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5월 12일은 평택에서 오산까지 17km를 걸어가는 일정이었다. 거리가 멀지 않은 덕분에 여유롭게 10시 30분께 출발하였다. 점심 무렵에는 같이 걷는 친구 현웅이의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국토종주를 하느라 지친 우리에게 몸보신을 시켜주고 싶다면서 닭백숙을 사주셨다. 어머니는 현웅이가 벤자민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면서 국토종주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응원의 말을 전했다. 
 

▲ 닭백숙을 맛있게 먹고 현웅이 어머니와 식당 안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저녁때가 되어서는 벤자민학교 경기남부학습관 강문정 선생님께서 숙소로 마중 나왔다. 곧 바로 식당으로 가 부대찌개를 사주셨다. 언제나 곁에서 우리를 지도해주시는 선생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 순례길을 기획하고 걷는 데는 항상  부모님과 벤자민학교 선생님들이 뒤에 계셨다. 

든든한 조력자로서 우리를 도와주고 믿어주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지구경영 순례길은 단순히 우리만의 순례가 아닌 우리를 도와주셨던 분들의 마음까지 함께한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꼈다. 

5월 13일은 오산에서 출발해 다섯 번째 중간 거점인 안산세월호 분향소를 가는 날이었다. 거리는 26km였다. 세월호 유가족이신 홍영미 멘토님과 분향소에서 저녁 8시까지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걸음을 재촉했다. 

날씨 때문에 유난히도 힘든 날이었다. 아침에 바람이 불어 모래먼지가 심하게 날렸다. 오후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해 이내 빗줄기가 굵어졌다. 우비를 입었는데도 옷이 다 젖어버렸다. 세월호분향소를 방문하는 날이어서 그런지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보며 하늘 또한 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6km까지 걸어간 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분향소 근처 역인 초지역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저녁 때가 되어서 비는 멈추었고  저녁 노을이 하늘을 물들였다. 비가 멈춰준 덕분에 예정되어 있던 동영상 촬영을 할 수 있었다. 분향소 입구의 거대한 노란리본 앞에서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동영상을 찍었다. 다 같이 '천개의 바람'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에 있는 구절처럼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이 죽지 않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 '지구경영의 꿈' 프로젝트 팀 대표 안태욱 군(왼쪽)과 부대표 오은수 양(오른쪽)이 세월호 망토를 매고 벤자민 플래그를 들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예정대로 8시가 되었을 즈음에는 홍영미 멘토님을 만날 수 있었다. 멘토님은 유가족 대기실 앞으로 마중을 나와 계셨다. 홍영미 멘토님은 세월호참사의 희생자이자 벤자민학교 1기 명예입학생인 고故이재욱 선배의 어머님이시고, 벤자민학교의 멘토이시다. 
 

▲ 분향소에 도착한 학생들이 플래그와 세월호 망토를 펼쳐놓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멘토님은 이곳 분향소가 '우리 모두의 양심이 밝아지는 곳'이라고 하셨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사람들의 양심이 깨어나기 시작했고, 대한민국이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세월호분향소는 대한민국 양심회복의 현장이고, 우리의 정신인 홍익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역사현장이라고 하셨다. 
 

▲ 유가족 대기실에서 홍영미 멘토님이 세월호분향소의 의미에 관해 설명해주고 있다.

멘토님께서는 손수 만든 나비를 선물로 주시면서 홍익의 정신을 전하는 인성영재가 되어달라고 하셨다. 나비는 '부활'을 상징한다. 생명이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기실을 나가면서 멘토님은 학생들을 한 명씩 안아주셨다. 
 

▲ 홍영미 멘토께 받은 나비 뱃지. 모든 친구들이 뱃지를 가방에 달고 그 의미를 되새겼다.

면담이 끝나고 분향소에서 분향을 했다. 국화를 든 채로 세월호사고 희생자들의 사진이 나열되어 있는 곳으로 갔다. 희생자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물이 났다. 모든 생명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멘토님은 말씀하셨다.  261명의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도 줄곧 우리와 하나였던 것이다. 그날 대부분의 학생들이 분향소에서 눈물을 흘렸다. 

5월 14일, 어제 비가 세차게 내려서 그런지 하늘이 맑았다. 아침 일찍 다시 한 번 세월호분향소를 찾았다. 어제와는 달리 이번에는 다짐하기 위해서였다. "홍익과 인성과 양심이 살아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구호를 외치고 분향소를 나왔다. 안산에서 출발해 여섯  번째 거점이 안양에 있는 충혼탑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거리는 24km. 늦은 시간인 11시 정도에 출발을 했기 때문에 저녁 8시에 충혼탑에 도착할 수 있었다. 

5월 15일, 드디어 한국 일정의 마지막 날이었다. 일정은 안양에서 출발해 서울 시청역의 환구단을 거쳐서 최종 목적지인 서울 광화문 광장까지 25km를 걸어가는 일정이었다. 

지금까지 쌓인 피로가 최고조에 달해 모든 친구들이 힘들어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끝마무리를 제대로 지어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끝까지 힘을 냈다. 서울에 진입하고 원효대교를 통해 한강을 건넜을 때 바람을 통해 전해지는 물비린내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 학생들이 서울 원효대교를 건너며 한국 최종목적지를 향해가고 있다.

오후 5시쯤 되어서 일곱 번째 거점인 환구단에 도착하였다.  환구단은 대한제국시대에 고종황제가 즉위식을 하고 일제의 침탈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 하늘에 지내는 제사인 '천제'를 지냈던 곳이다. 천제는 고조선 시대부터 이어져온 한민족의 전통문화였는데 이러한 문화가 근·현대에 와서도 이어져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유적이었다. 
 

▲ 지구시민 퍼포먼스를 하기 전 학생들이 미리 준비한 피켓과 명함을 들고 있다.

아쉽게도 건축물에 결함이 있어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다. 철골이랑 천막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 모습을 모두 보지는 못했다. 환구단에서 우리는 한국일정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지구시민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우리는 지구시민입니다!', '지구를 위해 한 가지만 실천해 주세요!', '우리들의 지구를 아껴주세요!'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광화문 광장까지 행진하는 것이었다. 
 

▲ 학생들이 '우리는 지구시민입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지구시민 퍼포먼스 행진을 하고 있다.

행진을 하면서 '지구시민입니다. 지구를 위해 한 가지만 액션해주세요.'라고 적힌 명함을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웃으면서 명함을 받았다. 
 

▲ 학생들이 시민들에게 지구를 위한 행동을 해달라고 호소하며 직접 제작한 명함을 전달하고 있다.

그렇게 1.5km 행진을 하면서 우리는 여덟 번째 거점이자 한국의 최종목적지인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였다. 광화문 광장은 수많은 시민이 참여한 촛불집회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곳이다. 대규모 집회가 열렸음에도 사상자가 없는 평화시위는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런 평화시위가 가능했던 이유는 한국인들의 가슴속에 나와 민족과 인류를 이롭게 하고자하는 홍익인간정신이 있었기대문이다.  따라서 세월호분향소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홍익정신이 남아있음을 알려주는 역사의 현장인 것이었다. 우리는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서로 기쁨을 나누었다. 
 

▲ 광화문 광장에 도착한 친구들이 환호하는 얼굴로 서로를 얼싸안고 있다.

이렇게 한국일정을 모두 마치게 되었다. 지구경영의 큰 꿈이 시작된 전주 모악산에서 출발해 한국인들 가슴속에 홍익정신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는 광화문 광장까지의 여정이었다. 길을 가면서 친구들은 나는 누구인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를 성찰하면서 홍익의 가치를 전하는 지구경영자로서의 역할을 생각하였다.  

우리에게는 아직 남은 길이 있다. 한국에서 지구경영, 지구시민운동의 시작과 현주소를 확인했다면, 앞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 때이다. 

다음 일정은 한국의 홍익인간 정신이 세계로 뻗어나갔음을 말해주는 일본의 ‘이세신궁’과 ‘구마노고도 순례길’이다.  

글/사진. 서재원 학생기자 seojw11111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