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종주 기획-4편] 나의 존재가치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구경영의 가치와 홍익정신을 전하기 위해 세워진 장소들을 거점으로 삼아 전북 전주 모악산에서 서울 광화문 광장까지 15일 간의 순례를 했다. 한국순례를 마친 우리에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일본이었다. 
 

▲ 학생들이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여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일본 일정은 5월 16일에서 21일까지 진행되었다.  이세신궁에서 출발해 유네스코가 지정한 '구마노 고도'라고 하는 순례길을 통해 '오와세'라는 지역까지 순례한다. 마지막 날인 21일에 오사카에서 지구시민 서밋(Summit)’을 진행한다.

5월 16일, 우리는 꼭두새벽인 3시 30분부터 일어나 6시에 공항철도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9시 30분에 출발했다. 항공료를 최대한 아끼려고 중국 상하이 푸동공항을 경유했기 때문에 일본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도착하기까지 6시간이 걸렸다. 

오후 5시 간사이공항으로 입국하여, 곧바로 지하철로 오사카 남바역으로 이동했다. 저녁 7시가 되어서 일본 선생님들과 일정을 함께할 일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일본 벤자민학교 2기 다카기 레오, 스나자키 미나미, 이시자키 쇼우타 3명이 우리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첫 출발지가 될 이세 지역의 숙소로 이동했다. 밤 11시에 숙소로 들어가기 전 친구들 모두 편의점 앞에 둘러앉아 자기소개를 했다. 언어가 다른 서로를 배려해서 한국 친구들은 일본어로 소개했고 일본 친구들은 한국어로 자기 소개를 했다. 처음 만나고, 말이 통하지 않아 서로 낯설어했지만 어색하게나마 이야기하면서 점차 웃음꽃이 피었다. 사는 곳도 언어도 서로 달랐지만, 한국인과 일본인을 떠나 모두가 같은 지구시민이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 일본에서의 첫날 한국과 일본의 벤자민 학생들은 편의점 앞에 둘러앉아 자기소개를 했다.

5월 17일, 드디어 본격적인 일본 일정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아홉 번째 거점인 이세신궁으로 이동했다. 이세신궁은 일본 혼슈(本州) 미에현(三重縣) 동부 이세(伊勢)에 있는 신궁이다. 도쿄의 메이지신궁(明治神宮), 오이타(大分)의 우사신궁(宇佐神宮)과 함께 일본의 3대 신궁으로 불린다. 이세신궁은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모신 곳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가장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이세신궁은 우리의 천손문화가 일본에 전해진 흔적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일본 신도는 신라 천일창 왕자에 의해 시작되었다. 천일창 왕자가 곰신을 신주로 모신 '구마노 히모로기'(곰신단, 熊神籬)을 가지고 일본 황실로 옮겨와 여러 신사가 세워지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이세신궁'이며, 청동검, 청동거울, 곡옥으로 이루어진 신종3기 중 거울을 보관하던 신궁이다. 따라서 이세신궁은 홍익인간의 이념을 가지고 있는 한민족의 정신이 일본까지 전해졌음을 알 수 있는 장소이다. 

일본 벤자민학교 학생 4명(코바 타이세이, 다카키 레오, 스나자키 미나미, 이시자키 쇼우타)이 이세신궁 가이드를 해주었다. 이세신궁 내궁 입구로 들어가기 전 우리는 입구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신궁 안에 모셔진 신에게 예를 갖추기 위함이었다. 조금 더 들어가면 긴 사각형 모양의 우물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신을 만나기 전 몸을 정갈히 하기 위해 손과 입을 씻는 '오즈츠'라는 의식을 치르는데 미나미가 그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 일본 학생들의 안내에 따라 우물 앞에 놓인 작은 바가지를 이용해 양손과 입을 차례로 씻었다.

내궁을 향해 가는 길 바닥에 자갈이 깔려 있었고 거대한 나무들이 양 옆에 늘어 서 있었다. 그 때문인지 걸어가면서 은은한 풀내음이 풍겨왔다. 길 너머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자갈을 밟는 소리와 흐르는 물소리가 어우러져 마음이 정갈해졌다. 
 

▲ 이세신궁 앞에서 한국 벤자민학교 플래그(파란색)와 일본 벤자민학교 플래그(보라색 아래) 벤자민갭이어 플래그(보라색 위쪽)를 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이세신궁 투어를 마치고 곧바로 걷기 일정을 시작했다. 오늘은 이세신궁에서 출발해 '타키'라는 곳까지 20km를 걸어가는 일정이었다. 한국에서는 대표인 태욱이가 선두에 섰지만 일본에서는 일본 대표인 타이세이가 선두에서 길 안내를 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일본의 시골 풍경을 보며 모두 신기한 얼굴이었다. 일본어로 된 표지판과 간판이나 늘어서 있는 일본식 가옥들도 흥미로웠다. 자동차가 다가올 때를 대비해서 안전봉을 휘둘렀는데 일본은 한국과 달리 좌측통행이어서 차량이 오는 방향이 정반대였다. 그래서 차가 오는 방향을 착각해 놀랐던 적도 많았다. 
 

▲ 한국에서 걸을 때와 마찬가지로 도로 위를 걸을 때에는 무조건 한줄을 유지하며 안전을 최우선으로 신경썼다.

저녁 7시 쯤 숙소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일본 벤자민 갭이어 요시무라 타쿠마와 한국 벤자민학교 1기 출신인 조은별 선배를 만날 수 있었다. 타쿠마는 우리가 하고 있는 순례길 프로젝트를 다큐멘터리로 촬영하기 위해 참여를 했고, 조은별 선배는 한국과 일본 친구들 간의 통역을 위해 참여하게 되었다. 외국에서의 순례에 낯설어 했던 친구들은 든든한 두 선배의 합류에 안심하게 되었다. 
 

▲ 한국과 사뭇 다른 일본의 길거리풍경에 학생들은 신기해하는 기색이었다.

5월 18일은 타키에서 출발해 ‘다이키’까지 32km를 걸어가는 일정이었다. 걷는 중간에는 구마노 고도라는 숲길도 있었다. 구마노 고도 순례길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보스텔라' 순례길에 이어서 두 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순례길이다. 일본에서는 무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순례길이다. 

구마노(熊野)는 곰 웅(熊)자와 들 야(野)자를 쓰는데 곰은 단군개국 설화에 나오는 곰에서 유래되었고 '들'은 한국의 고대어로 '나라'를 뜻한다고 한다. 합치면 '곰의 나라'가 된다. 한민족의 일부가 일본으로 건너와서 나라를 세웠다고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이세신궁과 마찬가지로 홍익인간의 정신이 일본에서도 이어져 내려왔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걷는 루트는 이세신궁이랑 마츠모토 고개를 잇는 '이세지' 루트, 그중에서 오와세라는 지역까지 순례를 한다. 하나의 길로 쭉 이어진 것은 아니고 민가를 따라 걸어가다 중간에 순례를 할 수 있는 코스가 나온다. 

정오가 되어서야 구마노 고도의 첫 번째 코스의 입구에 도착하였다.  3km정도 되는 숲길이었는데 숲에 들어서자 하늘을 향해 일자로 뻗는 침엽수 군락이 주변을 둘러쌌다. 바닥에는 큼지막한 고사리가 깔려 있는 것이 고대의 자연환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 학생들이 구마노 고도 순례길 입구로 들어서고 있다.

마치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느낌도 들었다. 숲길이 하나로 이어져 있을 뿐더러 걸어가는 도중에 구마노 고도 순례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계속해서 보였다.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가지 소리와 꾀꼬리 소리에 내가 자연 속에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숲길을 나와 다시 민가로 들어왔을 때에도 이 느낌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 구마노 고도의 입구마다 놓여있는 이정표로 순례길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구마노 고도 순례길 입구는 저녁 6시가 되어서 도착했다. 숲이어서 그런지 해가 빨리 졌기 때문에 금세 어두워졌다. 일본을 종주하던 중 가장 우려했던 야간산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친구들이 손전등을 들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4km밖에 되지 않는 산길이었지만 경사가 굴곡진데다가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걸음이 더뎌졌다. 

 

친구들은 나뭇가지, 절벽, 웅덩이 등의 장애물이 있을 때마다 바로 뒤에 있는 친구들에게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다. 단 한 친구도 힘들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얼마 안 남았다면서 서로를 격려했다. 우여곡절 끝에 숲길을 빠져 나왔을 때 이미 하늘은 검게 물들어있었다. 시골 마을의 깊은 밤이어서 그런지 하늘에 수놓인 별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그 별을 바라보며 위기를 넘긴 것에 대한 기쁨을 다 같이 나누었다. 홍익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순례길을 하는 동안 우리는 점차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는 홍익인간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 숲길을 걸을 때는 나무뿌리나 절벽 등 장애물이 있으면 조심하라고 서로에게 알렸다.

5월 19일은 다이키에서 ‘기호쿠’까지 총 30km까지 걸어가는 일정이었다. 그중에서 7km를 구마노 고도 순례길로 걸었다. 이날 미나미랑 쇼우타가 발목부상으로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었다. 어제 있었던 야간 산행 때 무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레오가 미나미랑 쇼우타를 데리고 숙소로 이동했다. 친구들은 오늘 푹 쉬고 내일 같이 힘내자고 두 사람을 위로했다. 

12km를 걸으니 세 번째 구마노 고도 코스의 입구가 나왔다. 숲길을 걷는 동안 두 손을 벌린 채로 걸었다.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서였다. 나무사이로 은은하게 흐르는 바람이 느껴졌다. 숲이 하나의 생명으로서 호흡하고 있는 것 같았다. 크게 심호흡을 해보았다. 나도 숨을 쉬고 숲 또한 숨을 쉰다. 모든 생명이 숨을 쉰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호흡을 통해 숲과 하나가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나의 모습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내보이기 위한 모습. 부족함 가득한 모습. 부끄러워 감추고 싶은 모습. 모든 것들이 자연 앞에서는 껍데기처럼 부질없게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숲과 하나 된 나 자신은 아무런 꾸밈없이 '생명' 그 자체로 존재했다. 구마노 고도 순례길을 걸으면서 친구들은 지금까지 쌓아온 물질적인 자신이 아닌 자신 안에 있는 본연의 모습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고요한 자연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더욱더 치열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 학생들이 '변하지 않는 자신은 무엇인가?'질문을 던지며 구마노 고도의 자연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이 여정이 끝났을 때 친구들은 분명 답을 찾을 것이다. 그때까지, 대답은 반드시 내안에 있다고 믿고 가는 수밖에 없다. 다음 편에는 20일 끝나게 되는 걷기일정과 21일 오사카에서 열릴 ‘한일지구시민서미트’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글/사진. 서재원 학생기자 seojw11111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