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어느 봄날 저녁에 두류공원 성당못에서 공원 수련동호회를 이끄는 한 국학기공 강사를 만났다. 인상도 좋고 체구도 컸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사람들이 공원으로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100여명이 모였고, 익숙하게 열과 줄을 맞추어 섰다. 국학기공 강사의 우렁찬 소리에 따라 인사를 하고 국학기공체조를 시작했다.

 

그 국학기공강사는 현재 전영기 대구광역시 국학기공협회 회장이다. 그는 58년생이고 올해로 61세다. 인생 전반기를 막 지났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열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그를 만나 21년간의 국학기공 인생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 전영기 대구광역시국학기공협회 회장. <사진=김경아 기자>

 

▶ 13년 전에 처음 만났지요. 그때는 강사였는데 지금은 대구시 회장이 되셨네요.

 

예. 기억이 납니다. 성당못 공원동호회는 저녁 7시나 8시에 국학기공수련을 했어요. 여름에는 저녁 식사를 하고(가족끼리 나오는 동호회원이 250명이 되었어요. 한번은 국학원 홍익정신 투어를 갔는데, 성당못 공원 동호회에서만 버스 3대에 나누어 타고 가기도 했습니다.

 

▶ 목소리가 워낙 커서 메가폰도 안 쓰고 그냥 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큰 체구가 울림통처럼 느껴졌었어요.

 

예, 그랬습니다. 매일 저녁마다 공원수련 지도를 하다 보니, 사업상 만나는 사람들과 친구들과도 저녁 약속을 하지 않았습니다. 친한 친구들은 저를 만나고 싶으면 공원으로 와서 함께 수련하고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늦은 저녁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그때는 40분 수련을 마치고 바로 끝나지 않았어요. 강사들에게 활공을 받으려는 분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고, 개인적으로 건강상담과 고민상담을 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낮에는 사업하느라 뛰어 다니고, 저녁에는 공원수련 지도와 상담도 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 당시 동호회 회장과 총무를 만났었는데요. 우리 전영기 강사님이 지역 국회의원보다 더 인기가 많다고 자랑을 하셨어요.

 

그렇게까지 칭찬을 하셨습니까? 지난 5년 동안은 시 회장을 하느라 공원지도를 못 하고 있는데요. 가끔 개인적으로 공원에 산책하러 나가면 알아보고 인사를 많이 하십니다. 얼굴 아는 분이 많아서 평생 좋은 일만 하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

 

▶ 국학기공과 첫 인연은?

 

21년 전이었습니다. 그때 토목회사를 하고 있었는데, 대구 토목회사들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스트레스와 마음고생이 너무 심했습니다. 간질환을 앓았어요. 황달에 걸려서 별의별 약도 다 먹어 보고 민간요법도 해 봤지만 효과가 없었어요. 황달에 걸리면 처음에는 얼굴빛이 노랗지만 심해지면 푸른빛이 되어서 어디 밖에 나갈 수도 없습니다. 몸에 기력이 다 빠져서요.

 

옆에서 보다 못한 직원이 저를 부축해서 단월드 성당센터로 데리고 갔습니다. 센터에 가서 몸의 상태, 기운 상태를 점검 받고 수련을 받는데 첫날부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운이 몸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지고, 마음이 너무 편안해지고,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나을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매일 수련을 열심히 해서 3개월 만에 나았습니다.

 

그때 수련한 사람들은 몇 개월 만에 강사가 되어서 홍익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저도 수련한지 4 ~ 5개월 만에 국학기공 강사교육을 받았어요. 제 몸도, 마음도 다 나았으니까, 나처럼 몸 고생, 마음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 강사교육 받고 바로 공원에 나가신 거군요?

 

달서구청 뒤에 있는 작은 동산이 있는데 새벽에 많은 분들이 운동하러 옵니다. 처음에 거길 갔습니다. 첫날은 용기가 없어서 차에서 내리지도 못했습니다. 이틀째 새벽에 갔는데 말을 못 걸었습니다. 사흘째 용기를 내서 한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 분은 제 이야기를 들어주실 것 같았어요. 아주 힘없고 약해 보이는 분이었어요. 그 할머니와 단전치기를 시작한 것이 첫 공원수련 지도였습니다.

 

이승헌 총장님이 38년 전에 서른 살의 젊은이로 처음 안양 충현탑 공원에서 중풍환자 한 사람에게 수련지도를 하신 것으로 국학기공이 시작되었는데, 저는 마흔 살에 첫 공원수련 지도를 하면서 그때 총장님의 마음이 어땠을지 실감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도 자신감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의식의 밝기가 200룩스가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국학기공 강사는 공원에 서는 순간 200룩스가 됩니다. 거기서 1년을 지도하고 후배 강사에게 물려주고 주민자치센터 수련지도를 갔습니다.

 

▶ 공원강사로서 겪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달서구청 뒷동산에서 할 때 1년 동안 경찰서에 3번 불려갔습니다. 좋은 일을 하고 왜 불려갔냐고요? 얼마 안 지나서 새벽 수련에 참가하는 분이 200명이 되었습니다. 아래에 고급 주택단지가 있었는데, 법조인들이 많이 살았다고 합니다. 새벽 5시만 되면 200명이 큰 소리로 구령을 맞추어 국학기공 수련을 하니까, 새벽잠을 주무시는 분들이 불편해서 경찰서에 고발을 했어요. 경찰서에 한번 불려갔다 와서는 동호인들에게 ‘우리 작은 소리로 합시다.’라고 했는데, 특히 연세가 많으신 공원 동호회 회원들이 처음에는 조용히 하시다가 다시 큰 소리로 해야 기운도 나고 가슴도 시원해진다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세 번 씩이나 불려갔습니다.

 

▶ 16년간 강사하면서 가장 보람있는 일은?

 

동호회에 나오시는 분들이 건강하고 행복해지시는 게 가장 보람이죠. 공원에 나오는 분들 중에 몸이 아주 안 좋은 분들이 있었어요. 공원수련만으로는 안 되는데 센터에 가서 집중수련을 받으시라고 해도 형편이 어려워서 못 가시는 거예요. 초창기에는 무료로 공원수련 지도를 했는데, 나중에는 생활체육회나 보험공단에서 지원금이 나오고, 또 동호회원들이 한 달에 5,000원, 10,000원씩 회비를 모아서 했습니다. 근데 그걸 모아두었다가, 그런 분들을 위해서 썼어요. 나중에 몸이 나아서 고맙다고 인사를 오시기도 하고, 또 후배강사가 될 때는 정말 보람 있고 감사했어요.

 

▶ 사업도 하면서 강사활동도 하려면 많이 바빴겠습니다. 16년간 공원강사로 활동하시다가 대구광역시 국학기공협회 회장을 맡게 되셨지요.

 

정말 그냥 좋아서 했습니다. 아프고 나서 토목사업은 정리하고, 그 후로 건물이나 주택 리모델링업을 했고, 몇 년 전부터는 건물 해체업을 하고 있습니다. 국학강사 하면서 홍익을 해서 그런지, 사업도 큰 문제없이 해 오고 있습니다.

 

2001년에 두류공원 성당못 동호회도 개설하고, 신규 강사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많은 공원 동호회를 개설했습니다. 6년 정도 강사활동을 했을 때인데요. 그때 대구시 국학기공회장을 하셨던 분이 무얼 하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달서구 국학기공 사무장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왜 구 회장이 아니고 구 사무장이냐고 하더군요. 저는 구사무장이 열심히 뛰는 게 더 좋아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근데 막상 구 사무장이 되니까 컴퓨터로 문서작업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겁니다. 회사에서는 사무직원에게 시키면 되는데 직접 해야 했어요. 마우스도 안 만져봤는데. 한글, 워드도 해야 하고, 액셀도 해야 하고, 그래서 컴퓨터 학원에 2개월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구 사무장을 4년 하다 보니 실무적인 일에서 행정적인 것까지 다 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달서구 회장을 6년하고, 올해로 대구광역시 국학기공회장을 5년째하고 있습니다. 달서구 회장할 때까지는 계속 공원수련 지도를 했습니다.

 

▶ 대구 국학기공이 전국적으로도 탄탄하다고 소문이 나 있습니다.

 

국학기공 강사는 200명이 되고, 공원 40개, 노인정 및 경로당 60개, 주민자치센터 및 복지관 60개, 학교스포츠클럽 28개교 등 해서 200여 개 동호회가 있습니다.

 

공원동호회는 지금 8개 구, 군에 40곳에서 하고 있는데, 50명 내외의 규모로 하고 있습니다. 경로당은 신규 강사들이 나오면, 선배 강사들이 데리고 가서 시범을 보여주고 현장 지도법을 전수해 주고 해서 1주일에 한 번씩 무료봉사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민자치센터와 복지관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 전영기 대구광역시국학기공협회장은 올해 시민들과 함께 국학기공 건강행복체험을 할 수 있는 시민건강문화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 특히 학교스포츠클럽 국학기공이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구시내 28개 초. 중. 고등학교에서 학교스포츠클럽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 대구 학교스포츠클럽 대회에 500명의 학생 선수단이 참가했습니다. 시 체육회에서도, 교육청에서도 규모와 열기를 보고 놀라워했습니다.

 

특히 대구지역에는 전국적으로 모델이 되는 학교가 있습니다. 달성군에 있는 논공중학교인데요. 그 학교 윤성혁 체육부장 선생님이 원래 국가대표 체조선수였던 분인데, 학교스포츠클럽으로 여러 종목을 검토하여 그 중에 국학기공을 도입했습니다. 정병국 교장선생님도 아주 적극적으로 지원하셨고요. 전교생을 대상으로 재작년에 6개월 동안 국학기공을 하고, 학교 담을 뛰어넘어 다니는 학생이 없어졌답니다. 저절로요. 학교평가에서 학교 폭력 제로, 학력 미달 제로를 받았어요. 지금은 대구시 대회, 학교스포츠클럽 전국대회, 전국 국학기공대회를 상을 휩쓸고 다니고 있습니다. 시나 교육청 행사에도 초청받아 시범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언론에도 사례가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대구는 한때 학교폭력과 청소년자살문제를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었습니다. 학교스포츠클럽 국학기공으로 청소년 인성 및 창의성 함양과 소통하는 학교문화 정착으로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모델도시가 되었으면 합니다.

 

▶ 대구지역에서 학교스포츠클럽이 확산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직접 학교를 찾아다니며 국학기공에 대한 정보를 주고 설득했습니다. 학교 교장선생님이나 관계자 분들은 항상 청소년 인성문제 해결에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찾고 있지만, 어떤 것이 효과가 있는지를 알 수 없지요. 대구 국학기공의 류지헌 사무국장과 학교스포츠클럽 담당하면서 대구뇌교육협회 사무처장을 겸직하고 있는 이순덕 처장이 직접 학교를 방문해서 학교스포츠클럽 국학기공을 소개하며 열정적으로 뛰어다녔습니다. 두 분의 공로가 아주 큽니다. 게다가 논공중학교를 비롯해 먼저 시행한 학교에서 모범 사례가 나오니까, 언론에도 나오고 자연스럽게 교장단 회의에서 이야기 나오면서 확산될 수 있었습니다.

 

▶ 2016년에는 제 4회 국제국학기공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는데요. 대구광역시와 함께 공동으로 주최했지요.

 

예, 대구에서 함께 오랫동안 활동했었던 박민준 대한국학기공협회 중앙 사무처장이 어느 날 대구가 국제국학기공대회를 유치해야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1주일 동안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던 것 같아요. 대구시 체육회와 공동주최를 하고, 시 체육회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국학기공의 위상으로 가능할지에 대해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입이 부르틀 정도로 고민하다가 한번 부딪혀보자 해서, 시청으로 갔습니다. 보통 과장님과 업무협의를 하는 정도였는데, 그날은 제가 개인적으로는 만난 적이 없던 국장님 방으로 그냥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국제국학기공대회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전 세계 7개 국과 전국에서 5,000명 국학기공 동호인들이 왔을 때, 대구에 어떤 도움이 될지도 이야기했습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혼신의 열정을 다해 이야기 했습니다. 국장님이 검토해 보겠다고 해서 돌아왔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속이 다 타 들어갔습니다. 다시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을 때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 후 여러 차례의 검토와 행정적인 절차를 거쳐서 2016년 10월 1일 대구 엑스코에서 개막식을 시작으로 4회 국제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권영진 시장님과 시의원님, 지역 국회의원님, 대한체육회와 시체육회 관계자 분들이 참석하셔서, 홍익정신의 세계화를 상징하는 국제 국학기공의 위상을 보시고 감동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 7개 국과 전국에서 온 참가 선수단과 동호회원들도 많은 감동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대구지역의 국학운동을 총괄하시는 이소미 국학원장님의 도움이 컸고, 국학기공 지도자와 강사들의 합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일을 이루어 냈다는 것이 꿈만 같습니다. 제가 21년 동안 국학기공에 몸담아 오면서, 지난 5년간 회장을 하면서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일이면서, 또 가장 기쁘고 행복한 일입니다. 그냥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공원에 나가서도 그랬고, 국제국학기공대회 개최도 그랬습니다. ‘그냥 하면 된다’ 제가 이승헌 총장님의 어록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 국제대회를 유치하고 개최하고 난 이후에 변화가 있었습니까?

 

대구시에 72개 체육단체가 있는데, 국제대회 개최 후에 위상이 달라졌습니다. 시장님도 국학기공을 먼저 알아봐 주시고, 체육회 관계자 분들도 ‘국학기공’하면 신뢰를 하게 되었습니다. 연말에 체육유공자 시상식에 가면 이전과는 달리 많이 알아봐 주시고, 많이 반가워합니다. 국학기공에서 무엇을 하는지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는 것이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열심히 해야겠지요.

 

▶ 작년 말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장을 받았다고

 

제가 회장이 되고 나서, 연말에 시체육회에서 하는 유공자 시상에 항상 구회장님들을 한 분씩 돌아가면서 추천을 했었습니다. 그랬더니 왜 회장은 상을 안 받느냐고 물어오더군요. 제가 “여덟 분의 구, 군회장님들이 받고 나면 제일 마지막에 받겠습니다.”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연말에 대구시에서 2개 체육단체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장을 받게 되었는데, 저희 단체가 받게 되었습니다. 국제국학기공대회 유치와 시민건강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평가 받은 것입니다. 회장으로서 대표해서 받았으니까 더 큰 상을 받은 셈입니다.

 

▶ 올해 대구 국학기공의 비전과 계획은?

 

지금까지 해 왔던 사업과 대회 등은 꾸준히 해 나갈 겁니다. 추가로 올해는 세 가지 비전이 있습니다.

 

첫째는 신규 국학기공 강사를 500명을 양성하려고 합니다. 강사를 희망하시는 분들을 위해 3급 과정 강사교육을 개설하려고 합니다.

둘째는 치매예방을 위해서 경로당, 노인정 순회 정기 수련지도를 하려고 합니다. 정기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예산 지원이 필요한 사업이라 추진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시민건강문화 캠페인을 하려고 합니다. 대구시에는 두류공원과 같이 큰 공원들이 많습니다. 시민들과 함께 국학기공 건강행복체험을 할 수 있는 시민건강문화 행사를 정기적으로 하고 싶습니다. 대구시민들이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시민건강문화운동을 하겠습니다.

 

▶ 국학기공은 무엇이고, 국학기공 강사는 어떤 사람이다 라고 한마디로 말한다면

 

국학기공은 몸과 마음의 자세를 바르게 해 줍니다. 몸과 마음은 하나입니다. 몸 자세가 바르면, 마음 자세도 바르게 됩니다. 바르다는 것은 당당하다는 것이고, 자신의 건강과 행복에 자신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국학기공 강사는 홍익인간입니다. 이승헌 총장님이 그러셨지요. 공원에서 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지도를 하면 절로 정직하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된다고요. 그 사람은 무슨 일이던지 할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진다고요.

 

제 경우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공원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빛과 얼굴을 떠올리면 안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의 홍익이 쌓여서 인성이 밝고 바른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 대구 국학기공협회에 회장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우리 류지헌 사무국장님 말씀이시군요. 30년 인연입니다. 제가 토목회사를 할 때 직원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저보다 1년 먼저 단학수련을 시작해서 황달 걸린 저를 부축해서 성당센터로 데리고 갔고요. 아이들에게도 늘 고마운 아재였습니다. 류 사무국장과 저는 국학기공 강사 하면서 함께 성장해 왔어요.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고요. 가장 든든한 비전 파트너입니다.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 마지막으로 개인질문 드리겠습니다. 이제 인생 2막, 후반기를 시작하시는 나이인데요. 앞으로 인생계획은?

 

21년을 국학기공과 함께 살다 보니 올해 61세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대구시국학기공협회를 대구시민의 건강문화에 기여하는 대표적인 체육단체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임기를 마치고 나면 공원강사로 돌아가서 90살까지, 그 이후라도 기력을 다하는 날까지 공원에 수련지도를 나갈 겁니다. 120살까지 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자기 관리를 하면서, 열심히 하루하루 홍익하면서 살겠습니다. 인명재천(人命在天)이니 그날까지 홍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