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觀點)이란 우리가 세상을 보는 프레임(Frame)이자 렌즈를 말합니다. 내가 어떤 관점으로 대상을 보느냐에 따라 삶이 나를 마주 보는 모습도 바뀝니다. 그래서 관점이 중요합니다. 지구는 자전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지구가 자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회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태양을 비롯한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天動說)은 우리가 직접 우주 밖으로 나가서 관측할 수 없었기에 과거에는 거의 사실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지해 있는 하늘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천동설 관점은 지구에서 본 관점이고 지동설(地動說) 관점은 하늘(우주)에서 본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지동설은 기준점을 지구에서 하늘(우주)로 바꿔본 일종의 역지사지(易地思之) 관점입니다. 1543년에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표하고 1632년 지동설의 타당성을 담은 갈릴레이의 저서 『두 가지 주요 세계관에 관한 대화』("Dialogo sopra i due massimi sistemi del mondo")가 발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해 10월에 갈릴레이는 로마의 종교재판소에서 지동설을 부정하게 됩니다.

그 후 1687년에 뉴턴이 수학적 방법론을 이용하여 자연계의 운동을 수식으로 완벽히 기술한 『프린키피아』(Principia)를 출간함으로써 천동설이 완전히 폐기되고 지동설이 확고해집니다. 세상 사람들의 인식이 지구 관점에서 하늘 관점으로 관점이동을 하는 데 코페르니쿠스부터 뉴턴에 이르기까지 144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점을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물질이 입자(粒子)라고 보는 관점은 양자역학이 나오면서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물질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보면 원자(原子)와 전자(電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와 전자를 확대해보면 소립자(素粒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소립자는 양자장(量子場)으로부터 생깁니다. 양자장은 에너지장이므로 에너지가 양자장의 어느 한 곳에 집중되면 그곳에 작은 파동이 생기는데 이것이 소립자입니다. 그러므로 에너지가 응축되면 물질이 나타나고 에너지가 흩어지면 물질이 사라집니다. 마치 온도가 내려가면 물이 얼음이 되고 온도가 올라가면 얼음이 물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은 딱딱하고 무거운 대상으로 가득 차 있지만, 실은 이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한한 정보가 저장된 거대한 에너지장인 양자장입니다.

블랙홀(Black hole)이라는 용어를 대중화한 미국의 물리학자 존 아치볼드 휠러( John Archibald Wheeler)는 22세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아인슈타인과 공동으로 연구를 한 세기의 천재였습니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1950년대에는 만물이 물질이라고 생각했다.(Everything is particles)
그 후에는 만물이 에너지가 얽혀있는 장이라고 생각했다.(Everything is fields)
그 후에는 만물이 정보라고 생각했다.(Everything is information)

물질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원자라는 관점에서 정보가 저장된 에너지장(양자장)이라는 관점으로 전환되고 있지만 우리는 실감(實感)을 못 합니다.  왜냐 하면 우리 감각에는 물체들이 보이고 만질 수 있기에 입자라는 관점이 더 와닿기 때문입니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관점이 바뀌면서 천문학의 혁명, 그리고 근대 과학혁명이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뉴턴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관점이 바뀜으로 물리학, 생물학, 의학, 뇌과학, 심리학, 컴퓨터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양자역학이 밝힌 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근원은 정보가 저장된 에너지장인 양자장입니다. 양자장에는 정보가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암석은 암석의 정보로 형태를 유지하고 흙은 흙의 정보로 흙의 형태를 유지합니다. 인간도 양자장이며 양자장은 진동(振動)하는 파동(波動)으로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각자의 파동과 주파수(周波數)를 가지고 있으며 파동인 생각과 감정은 자신과 주위 환경의 양자장을 변화시킵니다.

전 세계 뇌과학 연구의 중심지인 하트매스 연구소(HeartMath Institute)의 양자생물학자 글렌 레인(Glen Rein)과 롤린 맥크레이티(Rollin Maccraty) 박사가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진행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물리적으로 접촉하지 않고 단지 긍정적인 감정에 몰입해 시험관에 담긴 DNA가 휘감기거나 풀어지는 상상을 통해 실제 나선형 구조의 DNA 분자를 휘감기거나 풀리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실험은 생각과 감정의 파동이 자신의 몸 밖에 있는 시험관에 담긴 DNA 유전정보까지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로써 우주 만물은 서로서로 이어주는 양자장으로 연결되어 있고 생각과 감정의 파동은 자신과 주위 환경의 양자장을 변화시킴을 알 수 있습니다.

1900년, 막스 플랑크(Max Planck)가 자신의 흑체복사 이론을 전개하기 위하여 ‘에너지의 양자화’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양자역학은 그 포문을 열었습니다. 천동설 관점이 지동설 관점으로 바뀌기까지 144년이 걸렸듯이 물질의 근원이 원자라는 관점에서 양자장이라는 관점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지 124년이 되었습니다.

양자역학이 밝힌 혁명적인 세계관으로 인해 의학, 심리학, 성공학, 자기계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상훈련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상상치유' '이미지 트레이닝', '멘탈 트레이닝', '시각화 기법' 등으로 불리며 많은 사람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 상상훈련을 합니다. 환자는 건강한 모습을 상상하고, 운동선수는 승리하는 모습을 시각화하고, 사업가는 성공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연주자는 훌륭한 공연을 시각화합니다. 이처럼 모든 분야에서 상상훈련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상훈련으로 효과를 보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효과를 보지 못 합니다. 왜냐 하면 관찰자(觀察者) 의식으로 관점 이동이 된 후에 소망을 이루기 위한 상상을 해야 하는데 많은 사람이 관찰자 의식으로 관점 이동이 안 되었기에 효과를 못 본 것입니다.

하트매스 연구소의 글렌 레인과 롤린 맥크레이티 박사의 시험관에 담긴 DNA를 바꾸는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관찰자 의식을 유지하는 훈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관찰자 의식은 무엇일까요?

뇌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경험 자아, 기억 자아, 배경 자아가 공존(共存)하고 있습니다. ‘경험 자아’는 현재 내가 경험하는 것을 느끼는 자아입니다. ‘기억 자아’는 지나간 경험을 회상하고 평가하는 자아이고 배경 자아는 관찰자 의식으로 경험 자아와 기억 자아를 알아차리는 의식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영화를 보면서 영화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은 경험 자아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영화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기억 자아입니다. 영화를 보다가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영화를 보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는 자아가 존재합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는 나’가 배경 자아인 관찰자 의식입니다.

기억 자아는 만3.5세부터 형성이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 세 살 이전 일은 기억을 못 합니다. 과거에 대한 회상, 미래에 대한 예측과 그에 따른 의사결정, 예컨대 지금 무슨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과 같은 것은 전적으로 기억 자아에 의존해서 이루어집니다.

경험 자아는 현재 몸의 고통을 느끼거나 혹은 편안함을 느낄 때 또는 즐거움이나 행복감과 같은 현재 오감(五感)을 느끼는 자아입니다. 경험 자아는 기억 자아와 배경 자아를 연결하고 있으며 항상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기억 자아와 경험 자아의 다른 이름이 에고(ego)입니다.

배경 자아는 기억 자아나 경험 자아를 알아차리는 존재입니다. 모든 사물 뒤에 그것이 점유하는 텅 빈 공간이 있고 모든 소리 뒤에 그것이 점유하는 고요한 침묵이 있는 것처럼 모든 기억 자아나 경험 자아 뒤에는 그 존재를 가능하게 하고 그것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항상 존재하는 배경 자아인 관찰자 의식이 있습니다.

관찰자 의식(배경자아)은 스크린과 같습니다. 영화가 스크린 위에 상영되면서 영화 내용이 희극이 되었다가 비극이 되었다가 분노와 공포로 바뀌어도 스크린은 변함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서 희로애락이 펼쳐져도 관찰자 의식은 변함이 없습니다. 영화 속 인물이 태어나고 죽어도 스크린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몸이 태어나고 죽어도 관찰자 의식은 태어나거나 죽지 않습니다. 영화 속 인물이 병들거나 늙어도 스크린은 병들거나 늙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관찰자 의식은 병들거나 늙지 않습니다. 스크린이 없는 영화 상영이 없듯이 관찰자 의식이 없는 우주도 없습니다. 관찰자 의식은 항상 영원히 똑같은 상태로 존재합니다. 관찰자 의식은 배경자아, 참나, 진아, 신, 신성, 불성, 그리스도 의식, 순수의식 등과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습니다.

관찰자 의식의 스크린 위에 생각, 감정, 오감이 어우러져서 펼쳐지는 영화가 인생입니다. 영화 내용에만 관점을 두면 스크린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발짝 떨어져서 스크린에 관점을 두면 스크린과 영화를 모두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생각, 감정, 오감의 느낌에만 관점을 두면 관찰자 의식을 못 찾게 됩니다. 한 발짝 떨어져서 관찰자 의식으로 관점이동이 되어야 관찰자 의식과 생각, 감정, 오감 모두를 볼 수 있습니다. 관찰자 의식으로 관점을 이동하기 위해서 훈련하는 방법이 명상입니다.

뇌가 가진 잠재력을 깨워 뇌를 활용하기 위한 뇌운영시스템 보스(BOS) 법칙이 있습니다.

하나, 정신 차려라.
둘, 굿 뉴스가 굿 브레인을 만든다.
셋, 선택하면 이루어진다.

먼저 정신을 차리고 관찰자 의식으로 관점을 이동한 후에 나의 뇌에 긍정적인 정보를 주고 그 상태에서 원하는 소망을 선택하면 이루어집니다.

무엇보다도 관찰자 의식으로 관점을 이동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관찰자 의식으로 관점이 이동되면 내 몸은 내가 아니라 내 것이고, 내 생각은 내가 아니고 내 것이고, 내 감정도 내가 아니라 내 것으로 보게 됩니다. 관찰자 의식으로 관점이동을 쉽게 하려면 에너지가 맑아야 합니다. 에너지가 탁해져 있으면 관찰자 의식으로 관점이동이 안 됩니다. 그리고 에너지가 약하면 관찰자 의식으로 관점이동이 되었다가 유지를 못 하고 원래대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관찰자 의식을 깨우고 지속시키는데 에너지를 맑고 강하게 하는 에너지 수련(修練)이 필요합니다.

관점이동 하는 법을 깨우쳐도 계속 훈련을 통해 원할 때면 언제든지 관점이동을 할 수 있도록 연습이 필요합니다. 관찰자 의식으로 관점이동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어야 의식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관찰자 의식을 가진 사람은 슬픔도 기쁨도, 행복도 불행도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따라서 관찰자 의식으로 물질현상과 세계에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인류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관점이동이 되면서 1차 과학혁명이 일어났고 뉴턴의 고전역학 관점에서 양자역학 관점으로 이동되면서 2차 과학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양자역학과 뇌과학이 융합되면서 관찰자 의식으로 관점 전환이 일어나는 의식혁명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의식혁명이 일어나면서 관찰자 의식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관찰자 의식이 깨어나면 스스로 신(神)임을 자각하게 되고 신성(神性)이 작동해서 모든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현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관찰자 의식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신인류(新人類)입니다. 그리고 신인류가 1억 명이 되면 정신문명시대가 열릴 것입니다.